인물 기본정보
| 성함 | 단재 신채호 (申采浩, 1880~1936) |
|---|---|
| 주요 활동 | 언론 활동 · 역사 연구 · 독립운동 |
| 대표 저술 | 《독사신론》 · 《조선상고사》 · 《조선사연구초》 · 「조선혁명선언」 |
| 핵심 가치 | 주체성 · 자주독립 · 타협 없는 소신 |
주요 활동 연표
9건주요 활동 및 역사적 사실
성균관 박사로 출세하기 시작하여 《황성신문》 논설위원과 《대한매일신보》 논설주필로 일인의 폭행과 간계를 폭로하는 배일 논진을 펴서 독립사상을 고취하였으며, 《독사신론》(1908) 등을 저술하여 근대 민족사학의 기틀을 마련하였습니다.
신민회 가입 및 활동
1907년 국권회복운동 비밀결사인 신민회가 창건되자 가입하여 주요 회원으로 활동하고, 신민회의 이념을 반영한 논설 「이십세기 신국민」 등을 연재하였습니다.
의열단 「조선혁명선언」 집필
1923년 1월 의열단의 요청을 받고 강도 일제에 대한 민중의 직접 폭력 혁명과 무장 투쟁 노선을 천명한 「조선혁명선언」을 집필하였습니다.
국외 망명 및 《권업신문》 주필 활동
1910년 국외로 망명한 후 1911년 연해주 블라디보스톡에서 교민단체 권업회가 창간한 《권업신문》의 주필로 취임하여 독립사상을 고취하였습니다.
'아(我)와 비아(非我)의 투쟁' 사관
《조선상고사》, 《조선사연구초》 등을 집필하여 역사를 '아와 비아의 투쟁'으로 정의하고 한국사의 자주적 체계화를 시도하였습니다.
탐구 및 성찰
새롭게 알게 된 사실
《대한매일신보》 주필 시절 세수할 때 고개를 빳빳이 든 채로 물을 찍어다 바르는 버릇 때문에 옷과 바닥이 온통 물투성이가 되었음에도 "그러면 어때요"라며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는 춘원 이광수의 회고 에피소드를 알게 되었습니다.
또한 외래 사상을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사대주의와 노예근성을 비판한 구절을 통해 주체성을 강조한 기개를 확인하였습니다. 아울러 1919년 임시정부 수립 회의에서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 사실을 알고 강력히 반대하며 퇴장한 후 임정과 결별했던 역사적 사실도 알게 되었습니다.
성찰하기
가치: 주체성과 타협 없는 소신
이유: 일제의 식민주의 사관과 존화주의 중세 사학에 맞서 자주적 민족사학을 확립하고, 이승만의 위임통치 청원에 타협하지 않고 강력히 반대하였으며, 생활 속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을 만큼 강한 주체성과 소신을 지켰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 끼친 영향 및 행동 변화 계획: 남의 의견이나 유행에 무비판적으로 끌려다니지 않고 주체적인 소신을 세우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학교생활이나 모둠 활동에서 나의 역할과 책임을 다하며 편한 길에 타협하지 않고 책임감 있게 행동하겠습니다. 또한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한 올바른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 탐구하는 자세를 실천하겠습니다.
참고자료
| 공훈전자사료관 | e-gonghun.mpva.go.kr |
|---|---|
| 독립기념관 한국독립운동인명사전 | search.i815.or.kr |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 encykorea.aks.ac.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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